원래는 무화과자체는 별 생각없었다가 문학?적으로? 예술? 암튼 어딘가 관능적으로 해석되는 과일이지않나 싶어서 그런 이미지가 필요했던 헤이즐한테 붙여봤는데 그랬더니 헤이즐도 좋아지고 무화과도 좋아짐ㅋㅋㅋ 그래서 나중에 만든 장르계 닉도 과화무로 하게됐었어
무화과를 먹는 방법
무화과. 헤이즐의 나라를 설명하려면 그 단어부터 꺼내야 했다.
원래는 쿠헨의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작물에 불과했다. 바람조차 기운을 잃고 멈춰 서는 계절이면 땅은 눅진한 증기 속에서 지루하게 썩어갔지만, 무화과나무만은 그 권태로운 열기를 빨아들이며 끈질기게 열매를 맺었다. 농사가 유난히 잘 되는 해에는 넘쳐나는 과실로 담금주를 담갔고, 솥단지 가득 잼을 끓였으며, 시커멓게 졸여 케이크를 구웠다. 그뿐이었다.
이웃나라인 서펜테스에 군림한 왕이 폭정을 휘두르기 전까지는 지루할 만큼 조용한 나라였다. 산맥 너머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도 바다 건너 무역선의 화려한 향신료도 이곳까지는 닿지 않았다.
쿠헨과 오랜 동맹국인 바움의 두 후계자들이 적령기였기때문에 혼사가 추진됐다. 마침내 결혼하고 나라를 합친 뒤에는 공기의 냄새부터 달라졌다. 비비안 바움이 무화과를 국책 사업으로 밀어붙인 이후, 그저 지루하게 짓눌려 있던 도시의 습기는 진득한 열기로 변해 내려앉기 시작했다. 매년 수확철에 성벽을 개방하고 거대한 축제를 열었다. 바움은 본래 군대가 강성한 나라였기에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며칠 밤낮으로 축제를 벌여도 치안은 완벽했다.
무화과 잼을 끓이는 냄새, 무화과를 졸인 시럽의 농익은 풍미, 발효된 무화과주의 취기 어린 냄새가 도시 전체를 감싸면 성벽 밖까지 흘러넘치는 끈적한 단내를 따라서 사람들은 홀린 듯 몰려들었다.
헤이즐은 사실 무화과를 그렇게 좋아하는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맡아온 냄새는 익숙하다 못해 질릴 지경이었다. 어렸을 적 무화과 밭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 옷에 묻은 과즙을 빨래판에 문질러 빨던 하녀들, 여름이면 온 나라에 퍼지는 달큰한 냄새. 그 모든 게 너무나 평범했다. 물론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의 살내음, 머리카락, 옷깃 깊숙한 곳까지 그 농밀한 향기는 문신처럼 배어 있었다.
반면에 이자는 무화과라면 질색하는 인간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 광주리에 수북이 담긴 무화과에서 풍기는 오묘한 향에 홀려 손을 뻗었다. 검붉게 잘 익은 것들 사이에 덜 익은 게 있었는데 이자가 하필이면 그걸 집었다. 껍질째 크게 베어 물었을 때 혀끝을 쏘는 듯한 아린 맛과 역한 풀내음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탈이 크게 났다. 위장이 뒤집히는 고통 속에서 어린 이자는 맹세했다. 다시는 그 끔찍한 과일을 입에 대지 않겠노라고.
헤이즐 바움쿠헨과의 첫만남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이름을 알기도 전에 그에게서 풍겨오는 어딘가 묵직하고 비릿한 단내에 탓에 이자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발효된 과일 같은 달콤함과 나무 진액 같은 쓴맛이 섞인 냄새. 과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했다. 먹지도 못하는 과일 냄새를 풍기며 웃는 남자의 첫인상이 좋을 리 없었다.
능청스럽게 웃으며 치대는 태도 자체는 싫지 않았다. 헤이즐은 웃을 때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며 여우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말투도 부드럽고 낮았다. 하지만 가끔 장난스런 얼굴로 거리를 좁혀올 때면 헤이즐의 입가와 손끝에서 배어 나오는 그 달콤한 냄새 때문에 이자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마치 먹지도 못할 독과를 들이미는 뱀처럼 느껴졌으므로. 미소 짓는 입술이 갈라진 과육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
⠀⠀⠀ 무화과를 먹는 방법
⠀⠀⠀⠀⠀헤이즐×이자
────────────
거친 숨소리가 잦아든 침대 위는 온통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체액으로 젖어 아무렇게나 구겨진 하얀 시트 위로 핏빛과 꿀색이 섞인 오묘한 색이 내려앉았다. 무겁고 끈적한 방 안의 공기에서는 가시지 않은 열기와 땀 냄새가 훅 끼쳤다.
몸을 일으킨 이자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불쑥 물었다.
"혹시 당신에게서 나는 냄새가... 무화과예요?"
헤이즐이 나른한 눈을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좋아하십니까?"
"아뇨. 별로 안 좋아하는 과일이어서요."
단호한 대답에 헤이즐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자신만만하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왜 안 좋아하는데요?"
"...어렸을 때 먹고 탈이 났거든요."
건조한 대답과 함께 이자가 살짝 인상을 썼다. 덜 익은 과육을 씹었을 때의 아린 기억과 풋내 나는 즙이 입안 가득 터지던 불쾌함이 떠오른 탓이었다.
헤이즐은 한참이나 말없이 이자를 내려다보았다. 석양을 등진 탓인지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평소보다 짙은 갈색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당신이 무화과를 안 좋아한다니... 유감입니다."
묘한 말투였다. 헤이즐 본인도 딱히 즐겨 먹는 과일은 아니었지만 맛이 없다고 매도당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바움쿠헨에서 제일 잘나는 건데.
"어렸을 때는 원래 맛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 먹어도 별로던데요."
"당신이 진짜 맛있는 걸 못 먹어봐서 그러는 거예요."
이새끼가. 난데없는 후려침에 발끈한 이자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헤이즐을 돌아봤다.
"저도 그렇게 좋아하는건 아닙니다만..."
말을 흐리며 다가온 헤이즐이 손을 뻗어 이자의 턱을 살살 쥐었다. 닿아오는 손끝에서 다시금 달큰한 체취가 피어올랐다. 이내 그의 엄지가 이자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러 문지르기 시작했다.
"원래 무화과를 먹는 법에는 두 가지가 있거든요."
헤이즐이 비밀을 공유하듯 목소리를 낮췄다.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혔다.
"보통 사회에서 통용되는 건 점잖은 방법이에요. 꼭지를 잡고 네 조각으로 쪼개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조심스레 펼치는 거죠."
헤이즐의 손가락이 이자의 입술 선을 따라 느릿하게 미끄러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과일을 쪼개듯 위에서 아래로, 옆으로.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가 간지러웠다.
"그렇게 하면 장밋빛으로 반짝이며, 축축하고 꿀이 흐르는... 마치 무거운 꽃잎을 가진 네 갈래 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꽃받침처럼 남은 껍질은 놔두고, 입술로 그 꽃만 얌전하게 떼어 먹죠."
설명하는 헤이즐의 눈빛이 깊고 어두워졌다. 붉은 노을빛을 받은 그의 얼굴이 기이할 정도로 색정적으로 보였다. 잠시 말을 멈추고 이자를 바라보던 헤이즐이 몸을 숙여 이자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건 천박한 방법입니다."
"......"
"그냥 갈라진 틈에 입을 갖다 대고, 단숨에 속살을 빨아먹는 거에요."
이자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다. 헤이즐의 낮은 목소리가 척추를 타고 전율처럼 흘러내렸다. 그 노골적인 묘사가 방금 전 침대 위에서의 행위와 얽히고설켰던 몸뚱이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이자에게서 떨어진 헤이즐은 붉게 달아오른 이자의 귓불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언제 한번 저희나라로 오시죠."
"언...제요?"
이자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물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글쎄요. 9월 중순쯤."
구체적이었다. 마치 이미 계획이라도 세워둔 것처럼.
"9월 중순?"
"그즈음이 수확철이라 나라에서 무화과 축제를 여는데요."
헤이즐이 소근거렸다. 그의 손길이 이자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헝클었다.
"그러면 마을 구석구석에서 무화과 향기가 진동을 합니다. 잼 냄새, 케이크 굽는 냄새..."
손가락이 이자의 예민한 귀 뒤쪽을 스쳤다. 이자가 몸을 떨었다.
"축제를 2, 3주 정도 하는데, 축제 막바지에는 무화과가 푹 익어서 향기가 아주 진해져요. 공기 자체가 설탕에 절여진 것처럼 끈적해지죠."
목소리가 꿀처럼 달콤하고 눅진했다.
"술에 섞어 먹어도 좋고요."
헤이즐이 이자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방금 말한 그 '천박한 방법'을 상기시키듯 덧붙였다.
"그때쯤이면 껍질이 터질 정도로 잘 익어 있으니까요. 건드리기만 해도 붉은 속살이 터져 나올 만큼."
그의 손가락이 이자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축제가 끝나도 그 향기가 몇 주는 계속 남아 있습니다."
이자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헤이즐이 너무나 달콤하게, 그리고 위험하게 속삭였으니까. 당신처럼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저도모르게 뱉을 뻔했다가 겨우 삼켰다.
"당신도 한번 있다 가면..."
헤이즐이 속삭이며 이자의 입가에 가볍게 쪽, 입을 맞췄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무화과가 될 거예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헤이즐에게서 풍기는 향기 속에서 이자는 그의 말처럼 될 것임을 직감했다.
• 헤이즐의 대사에 D.H. 로렌스의 시, 『무화과』 의 첫 부분 인용됨
원래는 쿠헨의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작물에 불과했다. 바람조차 기운을 잃고 멈춰 서는 계절이면 땅은 눅진한 증기 속에서 지루하게 썩어갔지만, 무화과나무만은 그 권태로운 열기를 빨아들이며 끈질기게 열매를 맺었다. 농사가 유난히 잘 되는 해에는 넘쳐나는 과실로 담금주를 담갔고, 솥단지 가득 잼을 끓였으며, 시커멓게 졸여 케이크를 구웠다. 그뿐이었다.
이웃나라인 서펜테스에 군림한 왕이 폭정을 휘두르기 전까지는 지루할 만큼 조용한 나라였다. 산맥 너머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도 바다 건너 무역선의 화려한 향신료도 이곳까지는 닿지 않았다.
쿠헨과 오랜 동맹국인 바움의 두 후계자들이 적령기였기때문에 혼사가 추진됐다. 마침내 결혼하고 나라를 합친 뒤에는 공기의 냄새부터 달라졌다. 비비안 바움이 무화과를 국책 사업으로 밀어붙인 이후, 그저 지루하게 짓눌려 있던 도시의 습기는 진득한 열기로 변해 내려앉기 시작했다. 매년 수확철에 성벽을 개방하고 거대한 축제를 열었다. 바움은 본래 군대가 강성한 나라였기에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며칠 밤낮으로 축제를 벌여도 치안은 완벽했다.
무화과 잼을 끓이는 냄새, 무화과를 졸인 시럽의 농익은 풍미, 발효된 무화과주의 취기 어린 냄새가 도시 전체를 감싸면 성벽 밖까지 흘러넘치는 끈적한 단내를 따라서 사람들은 홀린 듯 몰려들었다.
헤이즐은 사실 무화과를 그렇게 좋아하는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맡아온 냄새는 익숙하다 못해 질릴 지경이었다. 어렸을 적 무화과 밭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 옷에 묻은 과즙을 빨래판에 문질러 빨던 하녀들, 여름이면 온 나라에 퍼지는 달큰한 냄새. 그 모든 게 너무나 평범했다. 물론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의 살내음, 머리카락, 옷깃 깊숙한 곳까지 그 농밀한 향기는 문신처럼 배어 있었다.
반면에 이자는 무화과라면 질색하는 인간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 광주리에 수북이 담긴 무화과에서 풍기는 오묘한 향에 홀려 손을 뻗었다. 검붉게 잘 익은 것들 사이에 덜 익은 게 있었는데 이자가 하필이면 그걸 집었다. 껍질째 크게 베어 물었을 때 혀끝을 쏘는 듯한 아린 맛과 역한 풀내음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탈이 크게 났다. 위장이 뒤집히는 고통 속에서 어린 이자는 맹세했다. 다시는 그 끔찍한 과일을 입에 대지 않겠노라고.
헤이즐 바움쿠헨과의 첫만남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이름을 알기도 전에 그에게서 풍겨오는 어딘가 묵직하고 비릿한 단내에 탓에 이자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발효된 과일 같은 달콤함과 나무 진액 같은 쓴맛이 섞인 냄새. 과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했다. 먹지도 못하는 과일 냄새를 풍기며 웃는 남자의 첫인상이 좋을 리 없었다.
능청스럽게 웃으며 치대는 태도 자체는 싫지 않았다. 헤이즐은 웃을 때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며 여우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말투도 부드럽고 낮았다. 하지만 가끔 장난스런 얼굴로 거리를 좁혀올 때면 헤이즐의 입가와 손끝에서 배어 나오는 그 달콤한 냄새 때문에 이자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마치 먹지도 못할 독과를 들이미는 뱀처럼 느껴졌으므로. 미소 짓는 입술이 갈라진 과육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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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화과를 먹는 방법
⠀⠀⠀⠀⠀헤이즐×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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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숨소리가 잦아든 침대 위는 온통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체액으로 젖어 아무렇게나 구겨진 하얀 시트 위로 핏빛과 꿀색이 섞인 오묘한 색이 내려앉았다. 무겁고 끈적한 방 안의 공기에서는 가시지 않은 열기와 땀 냄새가 훅 끼쳤다.
몸을 일으킨 이자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불쑥 물었다.
"혹시 당신에게서 나는 냄새가... 무화과예요?"
헤이즐이 나른한 눈을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좋아하십니까?"
"아뇨. 별로 안 좋아하는 과일이어서요."
단호한 대답에 헤이즐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자신만만하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왜 안 좋아하는데요?"
"...어렸을 때 먹고 탈이 났거든요."
건조한 대답과 함께 이자가 살짝 인상을 썼다. 덜 익은 과육을 씹었을 때의 아린 기억과 풋내 나는 즙이 입안 가득 터지던 불쾌함이 떠오른 탓이었다.
헤이즐은 한참이나 말없이 이자를 내려다보았다. 석양을 등진 탓인지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평소보다 짙은 갈색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당신이 무화과를 안 좋아한다니... 유감입니다."
묘한 말투였다. 헤이즐 본인도 딱히 즐겨 먹는 과일은 아니었지만 맛이 없다고 매도당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바움쿠헨에서 제일 잘나는 건데.
"어렸을 때는 원래 맛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 먹어도 별로던데요."
"당신이 진짜 맛있는 걸 못 먹어봐서 그러는 거예요."
이새끼가. 난데없는 후려침에 발끈한 이자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헤이즐을 돌아봤다.
"저도 그렇게 좋아하는건 아닙니다만..."
말을 흐리며 다가온 헤이즐이 손을 뻗어 이자의 턱을 살살 쥐었다. 닿아오는 손끝에서 다시금 달큰한 체취가 피어올랐다. 이내 그의 엄지가 이자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러 문지르기 시작했다.
"원래 무화과를 먹는 법에는 두 가지가 있거든요."
헤이즐이 비밀을 공유하듯 목소리를 낮췄다.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혔다.
"보통 사회에서 통용되는 건 점잖은 방법이에요. 꼭지를 잡고 네 조각으로 쪼개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조심스레 펼치는 거죠."
헤이즐의 손가락이 이자의 입술 선을 따라 느릿하게 미끄러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과일을 쪼개듯 위에서 아래로, 옆으로.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가 간지러웠다.
"그렇게 하면 장밋빛으로 반짝이며, 축축하고 꿀이 흐르는... 마치 무거운 꽃잎을 가진 네 갈래 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꽃받침처럼 남은 껍질은 놔두고, 입술로 그 꽃만 얌전하게 떼어 먹죠."
설명하는 헤이즐의 눈빛이 깊고 어두워졌다. 붉은 노을빛을 받은 그의 얼굴이 기이할 정도로 색정적으로 보였다. 잠시 말을 멈추고 이자를 바라보던 헤이즐이 몸을 숙여 이자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건 천박한 방법입니다."
"......"
"그냥 갈라진 틈에 입을 갖다 대고, 단숨에 속살을 빨아먹는 거에요."
이자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다. 헤이즐의 낮은 목소리가 척추를 타고 전율처럼 흘러내렸다. 그 노골적인 묘사가 방금 전 침대 위에서의 행위와 얽히고설켰던 몸뚱이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이자에게서 떨어진 헤이즐은 붉게 달아오른 이자의 귓불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언제 한번 저희나라로 오시죠."
"언...제요?"
이자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물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글쎄요. 9월 중순쯤."
구체적이었다. 마치 이미 계획이라도 세워둔 것처럼.
"9월 중순?"
"그즈음이 수확철이라 나라에서 무화과 축제를 여는데요."
헤이즐이 소근거렸다. 그의 손길이 이자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헝클었다.
"그러면 마을 구석구석에서 무화과 향기가 진동을 합니다. 잼 냄새, 케이크 굽는 냄새..."
손가락이 이자의 예민한 귀 뒤쪽을 스쳤다. 이자가 몸을 떨었다.
"축제를 2, 3주 정도 하는데, 축제 막바지에는 무화과가 푹 익어서 향기가 아주 진해져요. 공기 자체가 설탕에 절여진 것처럼 끈적해지죠."
목소리가 꿀처럼 달콤하고 눅진했다.
"술에 섞어 먹어도 좋고요."
헤이즐이 이자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방금 말한 그 '천박한 방법'을 상기시키듯 덧붙였다.
"그때쯤이면 껍질이 터질 정도로 잘 익어 있으니까요. 건드리기만 해도 붉은 속살이 터져 나올 만큼."
그의 손가락이 이자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축제가 끝나도 그 향기가 몇 주는 계속 남아 있습니다."
이자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헤이즐이 너무나 달콤하게, 그리고 위험하게 속삭였으니까. 당신처럼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저도모르게 뱉을 뻔했다가 겨우 삼켰다.
"당신도 한번 있다 가면..."
헤이즐이 속삭이며 이자의 입가에 가볍게 쪽, 입을 맞췄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무화과가 될 거예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헤이즐에게서 풍기는 향기 속에서 이자는 그의 말처럼 될 것임을 직감했다.
• 헤이즐의 대사에 D.H. 로렌스의 시, 『무화과』 의 첫 부분 인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