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듯 익어버린
내가 무역사신이라니.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내내 이마를 짚고 있던 이자는 잠시 후면 도착한다는 마부의 알림에 며칠 전을 떠올렸다.
슐랑거의 왕위계승 문제가 해결되고, 고이고 썩어있던 뿌리를 완전히 잘라낸 직후였다. 왕실에서 제안한 관직도 거절했고 원래대로라면 살라맨더로 복귀해야 했지만, 돌로레스가 '개인적인 부탁'이라며 간곡히 그를 붙드는 바람에 이자는 어쩔 수 없이 왕실에 체류하며 일을 돕게 되었다.
계승식 이후 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매일 서류 더미에 파묻혀 지내던 어느 날, 이자에게 느닷없이 무역사신 임명장이 날아들었다.
"무역... 제가요?"
"응, 급하게 결정된 거라서. 미안하지만 이자가 가줘야 할 것 같아."
이자가 따져 물어도 돌로레스는 번복하지 않았다. 결국 이자의 입에서 "전 관직도 없는데요?"라는 소리까지 튀어나왔지만 돌로레스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 돌로레스가 직접 신분을 증명하는 패나 필요한 서류들을 안겨줬고, 영문도 모른 채 마차에 태워져 도착한 곳은 바움쿠헨이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열기가 훅 끼쳐왔다. 슐랑거의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뜨거운 공기가 이자의 뺨을 핥아댔다.
하지만 이자를 당황하게 만든 건, 낯선 열대보다도 눈앞의 광경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로 다가온 헤이즐은 아주 완벽한 의전용 정복 차림이었다. 순간 이자는 자신이 고작 임시 사신 따위가 아니라 국빈으로 방문한 건가 착각할 뻔했다.
과분한 환대에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이런 더위 속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은 채로 땀방울 하나 없이 그림처럼 서 있는 헤이즐의 모습은 주변 풍경을 압도할 만큼 근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슐랑거의 사신."
오랜만에 만난 연인이 더없이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걸 보고 이자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이 모든 게 헤이즐이 계획한 것임을.
아, 물론 혼자만의 계획은 아니다.
억울할지도 모를 그를 위해 굳이 덧붙이자면, 이 사기극은 한때의 약혼관계이자 오랜 공범자였던 두 사람의 치밀한 합작품이었다.
바움쿠헨의 수확제를 앞두고 헤이즐은 돌로레스에게 두 개의 서신을 보냈다. 하나는 교역확대에 관한 서신, 또 하나는 사적인 내용의, 대놓고 말하자면 이자를 바움쿠헨으로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마침 돌로레스도 자신이 즉위 후 개같이 일만 하는 이자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던 참이었다. 헤이즐이 직접 양국 간의 무역이라는 그럴싸한 명분도 만들어왔으니 돌로레스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윗분들의 사정으로 인해 이자는 무역사신이라는 명목으로 바움쿠헨행 마차에 실렸다.
"사람들이... 다 미친 것 같아요."
이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헤이즐과 거리로 나온 참이었다.
"축제니까요. 온 나라가 당분에 취해 돌아버리는 기간이죠."
드디어 숨 막히던 예복을 벗어던진 헤이즐이 킬킬거렸다. 이곳의 왕자답게, 땀에 젖어 쇄골에 달라붙은 상의 단추를 세 개나 풀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를 담아 말한 건지 분명 알아들었을 텐데도 모른 척하는 뻔뻔한 모습에 이자는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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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 익어버린
⠀⠀⠀⠀⠀헤이즐×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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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얇고 하늘거리는 옷을 걸치거나, 아예 상의를 풀어헤친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괴한 것은 그들의 입가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술과 손가락이 온통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짐승의 내장을 파먹은 것처럼 보였다.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는 지독하게 달았다. 붉은 거리를 가득 메운 이방인들의 광기 어린 열광 속에서, 이자는 자신이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 것만 같았다.
"이리 오십시오. 길을 잃으면 누군가가 데려가서 잼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뭔가요, 그 오래된 동화같은 얘기는."
헤이즐이 자연스럽게 이자의 손을 잡고 인파 속으로 이끌었다. 맞잡은 손바닥 사이로 순식간에 땀이 찼지만 둘 중 누구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시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길가에는 수확한 무화과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거대한 솥단지에서는 잼이 펄펄 끓고 있었다. 바닥은 으깨진 과육과 시럽 때문에 걸을 때마다 쩍, 쩍 소리가 났다.
"이자, 이걸."
헤이즐이 길거리 가판대에서 꼬치 하나를 사서 불쑥 내밀었다. 설탕 시럽을 입혀 구운 통무화과였다.
"안 먹어요.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여기까지 와서 이걸 안 먹겠다는 건 반칙입니다."
거부하는 이자의 허리를 낚아챈 헤이즐은 꼬치 끝을 이자의 입술에 문질렀다. 끈적한 시럽이 입술에 묻어나자 이자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려 과육을 조금 베어 물었다. 바작, 설탕 코팅이 깨지면서 뜨겁고 물컹한 과육이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읍...!"
"맛있죠?"
너무 달았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단맛과 특유의 흙내음, 그리고 묘한 꽃향기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자가 억지로 삼키며 인상을 쓰자, 헤이즐은 남은 꼬치를 자신의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입가에 묻었습니다."
헤이즐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이자의 입술에 묻은 시럽을 닦아냈다. 그 손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가 빨아내다 말고, 이자와 한참동안 눈을 마주치던 헤이즐이 이자의 뒷목을 살짝 잡아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게 키스하고싶다는 눈으로 봐도 못합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그 적나라한 목소리가 이자의 귓가에 꽂혔다. 안면을 새빨갛게 붉힌 이자는 헤이즐의 얄미운 얼굴을 밀어내고 앞서 걸어나갔다.
*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거리의 열기는 식기는커녕 더 뜨거워졌다. 곳곳에 횃불이 켜지고, 악사들이 북과 피리를 불어대며 빠른 박자의 음악을 연주했다.
"이건 좀 마실 만할 겁니다. 도수가 좀 높지만..."
헤이즐이 가죽 부대에 든 술을 건넸다. 무화과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었다. 술이라면 괜찮을수도, 이자가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컥...!"
젠장, 이건 또 너무 독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만, 끝맛은 꿀처럼 끈적했다. 기침하는 이자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안은 헤이즐이 물을 건내며 말을 이었다.
"익숙해지면 괜찮을겁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걸 마시고 밤새 춤추고 뒹굴거든요."
턱 밑에 건내진 물을 밀어낸 이자는 다시 부대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헤이즐이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방심해서 그런거지 술의 도수가 높은건 별 문제는 아니었다.
소매로 입가에 묻은 술을 훔쳐내는 이자에게 헤이즐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술기운이 돌자 이자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아까부터 몸이 뜨거운게 더위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아니면 옆에서 집요하게 허리를 쓸어내리는 헤이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전하! 왕태자 전하 아니십니까!"
그때, 술에 취한 시민들이 헤이즐을 알아보고 환호했다. 두 사람이 서둘러 멀어졌다. 헤이즐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동안, 이자는 딴청을 부리며 술이 담긴 부대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왕자에게 깍듯한 예의를 차리는 대신에 먹던 과일이나 꽃을 던지며 축복했다.
"하하, 고맙다! 다들 즐겨라!"
헤이즐은 날아오는 무화과 하나를 한 손으로 능숙하게 받아내더니 바로 옆에 있던 이자의 입에 물려주었다.
"뭐, 뭐 하는..."
"선물이라지 않습니까. 물고 계세요."
이자는 엉겁결에 무화과를 입에 물었다. 황당했지만 이런 흐름에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꽃과 과일을 던져준 답례로 군중을 향해 손키스를 날리던 헤이즐은 이자의 손을 잡고 도망치듯 광장을 빠져나갔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몸이 닿을 때마다 덥고 습한 땀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냄새가 역겹지는 않았다. 거리 전체를 뒤덮은 달콤한 과일 향이 모든 악취를 덮어버리고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땀과 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 축제의 밤에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듯 했다.
두 사람 뒤로 폭죽이 하늘로 올라가 터졌다. 여러번의 폭죽소리와 함께 군중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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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 익어버린
⠀⠀⠀⠀⠀헤이즐×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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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너무 더워요, 헤이즐."
이자의 발걸음이 미묘하게 흐트러졌다. 독한 발효주의 취기가 혈관을 타고 돌며 체온을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희끼리 진짜 축제를 즐기러요."
멈춰선 헤이즐은 비척거리는 이자를 자신의 가슴팍으로 끌어당기며 귓불을 입술로 감싸 물었다. 부드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잘근잘근 씹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과수원으로 갈 겁니다. 안쪽은 여기보다 더 조용하고... 더 끈적하거든요."
귓불을 물고 있는 헤이즐의 뜨거운 입김이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자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면 그 끔찍한 무화과밭에 파묻혀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리와요."
헤이즐의 손에 이끌려 이자는 점차 으슥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축제의 횃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길이었지만 저 너머에서는 여전히 북소리와 환호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람들의 열광이 만들어낸 소음이 오히려 두 사람만의 공간을 더욱 은밀하게 만들었다.
과수원에 들어서자 세상이 멈춘 듯 고요했다. 나무마다 매달린 수천 개의 무화과가 내뿜는 농밀한 향기가 공기 중에 꽉 들어차 있어,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설탕 시럽을 들이붓는 것 같았다. 발효된 과일의 쿰쿰한 냄새와 꽃향기가 뒤섞여 마치 술 항아리 속에 들어온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말 그대로 꿀의 늪이었다.
"여기는... 밖보다 더 더운 것 같아요."
가까운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댄 이자가 숨을 몰아 내쉬며 단추를 몇 개 더 풀었다. 가슴팍이 드러나고 쇄골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거친 나무껍질의 감촉이 젖은 옷 너머로 느껴졌다. 평소라면 땀에 젖는다고 불쾌해했겠지만, 지금은 그 축축함마저 쾌락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가장 안쪽이니까요. 향기도, 열기도 갇혀서 나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잠시 안쪽을 둘러보던 헤이즐이 언제 딴건지 무화과를 손에 들고 천천히 이자에게 다가왔다. 완전히 익어서 껍질이 벌어진 검붉은 무화과였다. 푹익은 것을 대충 손으로 찢어 과육부분만 이자의 입에 넣어준 헤이즐은 남은부분에 입술을 갖다대고 속살을 단숨에 빨아먹었다.
"너무 달아서 머리가 아플정도라고 하시니 조금만 드린겁니다."
씹는 것도 잊은 채 자신을 멍하게 바라보는 이자의 입술을 엄지로 문지른 헤이즐이 쿡쿡, 웃었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이자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넘겨주며 붉게 상기된 얼굴을 감상하던 헤이즐은 이자의 입술에 제 입술을 스치듯 가져다 댔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헤이즐이 나직히 물었다.
"어떠십니까. 아직도 이 냄새가 역겨우십니까?"
풀린 눈으로 헤이즐을 올려다보던 이자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다가오며 키스해오는 헤이즐의 목에 스스로 팔을 감으며 안긴 이자는, 질척하게 혀를 섞다가 입술이 떨어지자 헤이즐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짐승처럼 킁킁거렸다. 헤이즐의 살에서 나는 체취와 과수원의 냄새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저 이 달아빠진 걸 얼른 먹어 치우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헤이즐은 제게 들러붙는 이자를 확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가슴이 밀착되자, 서로의 심장 고동이 피부 너머로 전해졌다. 거친 박동이 이자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두 사람은 하나로 엉겨 있었다. 코를 이자의 목덜미에 박고 깊게 숨을 들이키자 땀 냄새, 무화과 냄새, 그리고 이자만의 살냄새. 모든 것이 뒤섞여 헤이즐의 이성을 녹였다.
한 손으로는 이자의 허리를 살짝 들어안은 헤이즐은 고개를 숙여 가슴에 입을 가져갔다. 옷감 위를 천천히 더듬더니 유두를 찾아 입술로 감싸 빨아댔다.
"으응..."
침으로 젖은 직물이 민감해진 유두를 더욱 자극했다. 옷감의 거친 질감과 뜨거운 혀가 동시에 느껴질 때마다 이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헤이즐은 한쪽 유두를 충분히 괴롭힌 뒤 반대편으로 옮겨가 똑같이 빨고 핥고 깨물었다.
"아... 헤이즐..."
한 팔로는 이자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헤이즐의 다른 손은 이자의 바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뜨거운 손바닥이 엉덩이 살을 쓰다듬으며 골을 따라 더듬어 내려가 그 사이의 오므라든 구멍을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댔다.
"아...!"
헤이즐은 이자의 허리띠를 재빠르게 잡아 풀었다. 헐렁해진 바지가 허벅지를 타고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순식간에 이자의 하반신이 노출되었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자의 맨 허벅지를 움켜쥐고 들어 올린 헤이즐은 한쪽 다리를 자신의 팔에 끼웠다. 이자의 허벅지가 헤이즐을 향해 활짝 벌어졌다.
한쪽 발로만 땅을 디딘 채, 나무에 등을 붙이고 겨우 버티고 있던 이자는 헤이즐이 팔에 끼운 허벅지를 당기자 균형을 잃고 헤이즐에게 매달렸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서늘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헤이즐은 서둘러 자신의 바지 앞섶을 풀어 발기한 성기를 꺼내 이자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갖다 붙였다.
"으윽..."
헤이즐이 샅을 맞붙이고 허릿짓을 하자 단단한 것이 엉덩이 골을 파고들며 구멍을 찔러왔다. 겉만 보면 마른 상태처럼 건조해보였던 이자의 그곳은 헤이즐이 허릿짓할 때마다 끝부분이 조금씩 들어갔다 나오며 젖어갔다. 작정하고 귀두를 푹 담갔다가 뺐을 땐 구멍 안쪽에서부터 딸려나온 액이 실처럼 이어졌다.
헤이즐은 그대로 젖은 귀두를 구멍에다 비벼댔다. 잔뜩 달은 구멍이 귀두가 문질러질 때마다 벌름거리며 삼키려고 들었다. 아직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 묵직한 압박감과 뜨거운 열기만으로도 뱃속 깊은 곳이 저릿했다.
"기다리게 하지말아요.."
이자가 헤이즐의 목을 껴안으며 가쁜 숨으로 속삭였다. 헤이즐 역시 땀과 과즙으로 끈적해진 몸을 서로 비비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귀두가 스칠 때마다 애가 타서 엉덩이를 내리려고 드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헤이즐은 팔에 걸치고 있던 이자의 다리를 당겨 자신의 허리에 감게 했다. 땀에 젖은 허벅지 살이 헤이즐의 탄탄한 허리에 빈틈없이 맞붙었다. 살이 닿는 감각에 몸을 떨면서도 이자는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헤이즐을 올려다보며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먹기 좋게 익었군요, 이자."
그 말과 동시에, 두 손으로 땀으로 젖은 엉덩이를 움켜잡은 헤이즐은 발기한 것을 그대로 젖은 입구에 밀어 넣었다. 이미 달아오른 내벽이 헤이즐의 성기를 무리 없이 삼켰다.
독한 무화과주와 늦여름에 취한 이자는 저항할 힘도 부끄러워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다리가 풀릴 것 같아 헤이즐에게 더욱 매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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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 익어버린
⠀⠀⠀⠀⠀헤이즐×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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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이자는 눈을 떴다. 창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잔인할정도로 눈부셨다. 평소처럼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려던 이자는 몸을 움직이자마자 입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으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건 예사였고, 골반이 억지로 벌려진 채 굳어버린 듯 삐걱거렸다. 허리를 문지르고 있는데 잇다라 엄습해오는 두통에 이자는 잠시 이마를 짚었다. 아마 어제 마신 무화과발효주때문이겠지. 혼자서 한 부대를 다 비웠으니.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을 느낀 이자가 미간을 좁혔다.
가장 끔찍한 건 피부에 닿는 감각이었다. 씻지도 못하고 기절하듯 잠든 탓에 온몸이 설탕 시럽을 바른 듯 끈적거렸고 엉덩이 아래의 시트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제 안씻고 잤던가. 아직 잠이 덜깬 채로 마른세수를 하며 무심코 어젯밤을 떠올린 이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잠겨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선명하게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헤이즐의 물건을 탐욕스럽게 빨아댔던 입안의 감각, 으깨진 과육 위에서 미끄러지면서도 쾌락에 겨워 헤이즐의 위로 올라타 허리를 돌려대던 제 모습이 적나라하게 스쳤다. 그뿐인가, 침실에 와서도 부족하다며 "더 채워달라"고 다리를 활짝 벌리고 매달리기까지 했으니.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침구에 남은 말라붙은 정액과 과즙이 엉겨 붙어 만들어낸 붉고 희끄무레한 얼룩이 어젯밤 두 사람이 얼마나 미친 듯이 뒹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 흔적을 읽은 이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제기랄..."
이자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급격히 밀려드는 수치심에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팔이 이불 위로 이자를 감싸 안았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을 날씨는 아닌데."
헤이즐이었다. 잠기운에 젖어 낮게 갈라진 목소리에 짓궂은 웃음기가 역력했다.
돌아오는 답이 없자 헤이즐은 이불 덩어리를 억지로 끌어내렸다. 이자가 필사적으로 이불자락을 붙들고 버텼지만 힘에서 밀려 결국 얼굴을 드러내고 말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이자의 얼굴은 터질 듯이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얼굴이 왜 그래요. 감기라도 걸렸나."
헤이즐이 짐짓 모른 척하며 이자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이자는 그 뻔뻔한 손을 쳐내며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아니에요... 저리가요."
이자가 기어들어가듯 웅얼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자신과 거리를 벌리려는 이자를 지켜보던 헤이즐은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이불 속으로 슬그머니 손을 집어넣고 이자의 허벅지 안쪽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아니, 언제는 가지 말라고 여기로 제 허리를 꽉 조이시더니."
"아!"
이자의 매끈한 허벅지를 훑어 내리던 손아귀에 불현듯 억센 힘이 실렸다. 살이 눌릴 정도로 꽉 움켜쥐는 악력에 이자가 감전된 사람처럼 파드득 떨었다. 헤이즐의 손길이 닿은 살갗이 데인 듯 화끈거렸다.
"정말 섭섭하군요."
"그만해요."
이자가 두 손으로 허벅지를 움켜쥔 헤이즐의 손을 급히 밀어냈다. 헤이즐은 버티지 않고 순순히 떨어져 줬지만 묘하게 얌전한 태도가 오히려 더 수상했다. 의아함에 이자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자 헤이즐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이자, 당신이..."
감격에 겨운 듯 뜸을 들이는 태도에 영문을 모르는 이자가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 순진한 반응을 즐기듯 헤이즐의 눈매가 유려하게 휘어졌다.
"무릎으로 기어 와서 제 걸 빨아줄 때는 정말, "
이어지는 말에 기겁한 이자가 헤이즐의 입을 틀어막았다. 귀까지 빨개지다 못해 목덜미까지 붉게 물든 모습이 꽤 볼만했다. 입이 막힌 채로도, 헤이즐의 시선은 어젯밤 제 것을 집어삼켰던 이자의 입술에 집요하게 꽂혀 있었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이자가 고개를 획 틀어버렸다. 제 입을 막은 손바닥에 쪽, 키스하고 떼어낸 헤이즐의 눈빛이 짓궂게 반짝였다.
"왜 부끄러워합니까. 어제 아주 장관이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인줄 알았어요."
헤이즐에게 붙잡힌 손을 빼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어정쩡하게 몸이 묶여버린 이자는 울상을 지으며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놀리지 마요, 진짜..."
"놀리는 거 아닙니다. 당신에게 정욕의 화신이라도 내려온 줄 알고 그만 감동했지 뭡니까."
"제발 닥치라고요......."
헤이즐의 뻔뻔한 감상평에, 결국 이자는 더 듣지 못하겠다는 듯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어버렸다. 웅크린 등 위로 이자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잊어요... 제발 잊어줘요..."
"절대 못 잊죠. 내년 축제 때 또 해야 하는데."
낮게 웃음을 흘린 헤이즐이 베개 위로 드러난 이자의 뒤통수를 가볍게 투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이불을 완전히 걷어차 버렸다. 햇살 아래 드러난 이자의 몸 곳곳에는 헤이즐이 남긴 붉은 키스 마크와 어딘가에 긁힌 자국들이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욕실로 가시죠. 앞으로도 일정이 있으니."
헤이즐이 이자를 안아 올리려 하자 이자가 몸을 사리며 거절했다.
"됐어요. 혼자 할 수 있어요."
"어제 그렇게 혹사당했는데 걸을 수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헤이즐이 턱짓으로 이자의 다리 사이에 남은 하얀 자국을 가리켰다.
"혼자 처리하기 힘들 겁니다. 어제 제가 당신 뱃속에 몇 번이나 쌌는지 기억도 안 나거든요."
낯을 붉히게 만드는 적나라한 표현들만 골라쓰는데도 도저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않아 이자는 애꿎은 입술만 잘근거렸다. 이미 엉덩이가 구멍에서 스며나온 헤이즐의 정액으로 축축했다. 움직이면 당장이라도 쏟아질것 같았다. 숱한 고민 끝에 저항하기를 포기한 이자가 헤이즐에게 몸을 맡겼다. 이자를 안아들고 욕실로 향하던 헤이즐이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아, 아침 식사는 무화과를 곁들인 샐러드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
"왜요? 어제는 없어서 못 먹는다고 달려드시더니."
끝까지 놀려대는통에 분에 못 이긴 이자가 헤이즐의 가슴팍에 쿵, 쿵 머리를 박아댔다. 헤이즐은 맞으면서도 즐거운 듯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짜증스러운 움직임이 점차 약해지더니, 결국 이자도 못 말린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이 지독하게 달콤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
며칠간의 공식 일정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슐랑거와 바움쿠헨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교역을 성사시켰고 왕실로 보내는 막대한 예물이 슐랑거로 향하는 마차에 실어졌다.
"이건 당신 몫입니다."
이자가 마차에 오르기 전, 헤이즐은 작은 상자 하나를 이자의 손에 쥐여주었다. 상자 안에는 최고급 무화과로 담근 발효주 한 병이 들어 있었다. 이자가 물끄러미 상자를 내려다보는 사이에 헤이즐이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여왔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제가 보고 싶어질 때, 이 술을 당신 입에 머금으면서 여기서 보낸 축제의 밤과 저와의 키스를 기억해주십시오."
달콤한 술 향기보다 더 진득하게 달라붙는 목소리였다.
이자는 잠시 숨을 멈춘 채, 귓가를 맴도는 열기를 갈무리하듯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헤이즐을 응시하던 이자는 말없이 그의 손을 조심스레 받쳐 들었다. 곧게 뻗은 등이 깊숙이 굽혀지고 손등 위로 입맞춤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지켜보는 눈이 많은 이곳에서, 이자가 자신의 연인에게 건넬 수 있었던 것 중에 가장 정중하고 애틋한 대답이었다.
이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마차에 올랐다. 헤이즐은 이자가 탄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슐랑거로 복귀한 이자는 한동안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과실주는 물론 향이 강한 음료조차 피했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씩.
일과를 마치고 홀로 남겨진 밤이면 이자는 헤이즐이 준 무화과 주를 꺼내곤 했다. 작은 잔에 술을 따르자 코 끝에 익숙한 단내가 스쳤다. 잔을 기울인 이자는 단숨에 들이키지 않고 한 모금만을 입에 담았다.
그는 제 연인이 일러준 대로, 달큰한 그것을 오랫동안 머금고 있다가 천천히 목 뒤로 흘려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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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랑거의 왕위계승 문제가 해결되고, 고이고 썩어있던 뿌리를 완전히 잘라낸 직후였다. 왕실에서 제안한 관직도 거절했고 원래대로라면 살라맨더로 복귀해야 했지만, 돌로레스가 '개인적인 부탁'이라며 간곡히 그를 붙드는 바람에 이자는 어쩔 수 없이 왕실에 체류하며 일을 돕게 되었다.
계승식 이후 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매일 서류 더미에 파묻혀 지내던 어느 날, 이자에게 느닷없이 무역사신 임명장이 날아들었다.
"무역... 제가요?"
"응, 급하게 결정된 거라서. 미안하지만 이자가 가줘야 할 것 같아."
이자가 따져 물어도 돌로레스는 번복하지 않았다. 결국 이자의 입에서 "전 관직도 없는데요?"라는 소리까지 튀어나왔지만 돌로레스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 돌로레스가 직접 신분을 증명하는 패나 필요한 서류들을 안겨줬고, 영문도 모른 채 마차에 태워져 도착한 곳은 바움쿠헨이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열기가 훅 끼쳐왔다. 슐랑거의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뜨거운 공기가 이자의 뺨을 핥아댔다.
하지만 이자를 당황하게 만든 건, 낯선 열대보다도 눈앞의 광경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로 다가온 헤이즐은 아주 완벽한 의전용 정복 차림이었다. 순간 이자는 자신이 고작 임시 사신 따위가 아니라 국빈으로 방문한 건가 착각할 뻔했다.
과분한 환대에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이런 더위 속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은 채로 땀방울 하나 없이 그림처럼 서 있는 헤이즐의 모습은 주변 풍경을 압도할 만큼 근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슐랑거의 사신."
오랜만에 만난 연인이 더없이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걸 보고 이자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이 모든 게 헤이즐이 계획한 것임을.
아, 물론 혼자만의 계획은 아니다.
억울할지도 모를 그를 위해 굳이 덧붙이자면, 이 사기극은 한때의 약혼관계이자 오랜 공범자였던 두 사람의 치밀한 합작품이었다.
바움쿠헨의 수확제를 앞두고 헤이즐은 돌로레스에게 두 개의 서신을 보냈다. 하나는 교역확대에 관한 서신, 또 하나는 사적인 내용의, 대놓고 말하자면 이자를 바움쿠헨으로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마침 돌로레스도 자신이 즉위 후 개같이 일만 하는 이자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던 참이었다. 헤이즐이 직접 양국 간의 무역이라는 그럴싸한 명분도 만들어왔으니 돌로레스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윗분들의 사정으로 인해 이자는 무역사신이라는 명목으로 바움쿠헨행 마차에 실렸다.
"사람들이... 다 미친 것 같아요."
이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헤이즐과 거리로 나온 참이었다.
"축제니까요. 온 나라가 당분에 취해 돌아버리는 기간이죠."
드디어 숨 막히던 예복을 벗어던진 헤이즐이 킬킬거렸다. 이곳의 왕자답게, 땀에 젖어 쇄골에 달라붙은 상의 단추를 세 개나 풀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를 담아 말한 건지 분명 알아들었을 텐데도 모른 척하는 뻔뻔한 모습에 이자는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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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 익어버린
⠀⠀⠀⠀⠀헤이즐×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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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얇고 하늘거리는 옷을 걸치거나, 아예 상의를 풀어헤친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괴한 것은 그들의 입가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술과 손가락이 온통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짐승의 내장을 파먹은 것처럼 보였다.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는 지독하게 달았다. 붉은 거리를 가득 메운 이방인들의 광기 어린 열광 속에서, 이자는 자신이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 것만 같았다.
"이리 오십시오. 길을 잃으면 누군가가 데려가서 잼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뭔가요, 그 오래된 동화같은 얘기는."
헤이즐이 자연스럽게 이자의 손을 잡고 인파 속으로 이끌었다. 맞잡은 손바닥 사이로 순식간에 땀이 찼지만 둘 중 누구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시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길가에는 수확한 무화과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거대한 솥단지에서는 잼이 펄펄 끓고 있었다. 바닥은 으깨진 과육과 시럽 때문에 걸을 때마다 쩍, 쩍 소리가 났다.
"이자, 이걸."
헤이즐이 길거리 가판대에서 꼬치 하나를 사서 불쑥 내밀었다. 설탕 시럽을 입혀 구운 통무화과였다.
"안 먹어요.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여기까지 와서 이걸 안 먹겠다는 건 반칙입니다."
거부하는 이자의 허리를 낚아챈 헤이즐은 꼬치 끝을 이자의 입술에 문질렀다. 끈적한 시럽이 입술에 묻어나자 이자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려 과육을 조금 베어 물었다. 바작, 설탕 코팅이 깨지면서 뜨겁고 물컹한 과육이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읍...!"
"맛있죠?"
너무 달았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단맛과 특유의 흙내음, 그리고 묘한 꽃향기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이자가 억지로 삼키며 인상을 쓰자, 헤이즐은 남은 꼬치를 자신의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입가에 묻었습니다."
헤이즐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이자의 입술에 묻은 시럽을 닦아냈다. 그 손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가 빨아내다 말고, 이자와 한참동안 눈을 마주치던 헤이즐이 이자의 뒷목을 살짝 잡아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게 키스하고싶다는 눈으로 봐도 못합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그 적나라한 목소리가 이자의 귓가에 꽂혔다. 안면을 새빨갛게 붉힌 이자는 헤이즐의 얄미운 얼굴을 밀어내고 앞서 걸어나갔다.
*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거리의 열기는 식기는커녕 더 뜨거워졌다. 곳곳에 횃불이 켜지고, 악사들이 북과 피리를 불어대며 빠른 박자의 음악을 연주했다.
"이건 좀 마실 만할 겁니다. 도수가 좀 높지만..."
헤이즐이 가죽 부대에 든 술을 건넸다. 무화과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었다. 술이라면 괜찮을수도, 이자가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컥...!"
젠장, 이건 또 너무 독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만, 끝맛은 꿀처럼 끈적했다. 기침하는 이자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안은 헤이즐이 물을 건내며 말을 이었다.
"익숙해지면 괜찮을겁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걸 마시고 밤새 춤추고 뒹굴거든요."
턱 밑에 건내진 물을 밀어낸 이자는 다시 부대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헤이즐이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방심해서 그런거지 술의 도수가 높은건 별 문제는 아니었다.
소매로 입가에 묻은 술을 훔쳐내는 이자에게 헤이즐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술기운이 돌자 이자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아까부터 몸이 뜨거운게 더위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아니면 옆에서 집요하게 허리를 쓸어내리는 헤이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전하! 왕태자 전하 아니십니까!"
그때, 술에 취한 시민들이 헤이즐을 알아보고 환호했다. 두 사람이 서둘러 멀어졌다. 헤이즐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동안, 이자는 딴청을 부리며 술이 담긴 부대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왕자에게 깍듯한 예의를 차리는 대신에 먹던 과일이나 꽃을 던지며 축복했다.
"하하, 고맙다! 다들 즐겨라!"
헤이즐은 날아오는 무화과 하나를 한 손으로 능숙하게 받아내더니 바로 옆에 있던 이자의 입에 물려주었다.
"뭐, 뭐 하는..."
"선물이라지 않습니까. 물고 계세요."
이자는 엉겁결에 무화과를 입에 물었다. 황당했지만 이런 흐름에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꽃과 과일을 던져준 답례로 군중을 향해 손키스를 날리던 헤이즐은 이자의 손을 잡고 도망치듯 광장을 빠져나갔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몸이 닿을 때마다 덥고 습한 땀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냄새가 역겹지는 않았다. 거리 전체를 뒤덮은 달콤한 과일 향이 모든 악취를 덮어버리고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땀과 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 축제의 밤에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듯 했다.
두 사람 뒤로 폭죽이 하늘로 올라가 터졌다. 여러번의 폭죽소리와 함께 군중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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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 익어버린
⠀⠀⠀⠀⠀헤이즐×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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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너무 더워요, 헤이즐."
이자의 발걸음이 미묘하게 흐트러졌다. 독한 발효주의 취기가 혈관을 타고 돌며 체온을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희끼리 진짜 축제를 즐기러요."
멈춰선 헤이즐은 비척거리는 이자를 자신의 가슴팍으로 끌어당기며 귓불을 입술로 감싸 물었다. 부드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잘근잘근 씹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과수원으로 갈 겁니다. 안쪽은 여기보다 더 조용하고... 더 끈적하거든요."
귓불을 물고 있는 헤이즐의 뜨거운 입김이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자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면 그 끔찍한 무화과밭에 파묻혀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리와요."
헤이즐의 손에 이끌려 이자는 점차 으슥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축제의 횃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길이었지만 저 너머에서는 여전히 북소리와 환호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람들의 열광이 만들어낸 소음이 오히려 두 사람만의 공간을 더욱 은밀하게 만들었다.
과수원에 들어서자 세상이 멈춘 듯 고요했다. 나무마다 매달린 수천 개의 무화과가 내뿜는 농밀한 향기가 공기 중에 꽉 들어차 있어,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설탕 시럽을 들이붓는 것 같았다. 발효된 과일의 쿰쿰한 냄새와 꽃향기가 뒤섞여 마치 술 항아리 속에 들어온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말 그대로 꿀의 늪이었다.
"여기는... 밖보다 더 더운 것 같아요."
가까운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댄 이자가 숨을 몰아 내쉬며 단추를 몇 개 더 풀었다. 가슴팍이 드러나고 쇄골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거친 나무껍질의 감촉이 젖은 옷 너머로 느껴졌다. 평소라면 땀에 젖는다고 불쾌해했겠지만, 지금은 그 축축함마저 쾌락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가장 안쪽이니까요. 향기도, 열기도 갇혀서 나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잠시 안쪽을 둘러보던 헤이즐이 언제 딴건지 무화과를 손에 들고 천천히 이자에게 다가왔다. 완전히 익어서 껍질이 벌어진 검붉은 무화과였다. 푹익은 것을 대충 손으로 찢어 과육부분만 이자의 입에 넣어준 헤이즐은 남은부분에 입술을 갖다대고 속살을 단숨에 빨아먹었다.
"너무 달아서 머리가 아플정도라고 하시니 조금만 드린겁니다."
씹는 것도 잊은 채 자신을 멍하게 바라보는 이자의 입술을 엄지로 문지른 헤이즐이 쿡쿡, 웃었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이자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넘겨주며 붉게 상기된 얼굴을 감상하던 헤이즐은 이자의 입술에 제 입술을 스치듯 가져다 댔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헤이즐이 나직히 물었다.
"어떠십니까. 아직도 이 냄새가 역겨우십니까?"
풀린 눈으로 헤이즐을 올려다보던 이자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다가오며 키스해오는 헤이즐의 목에 스스로 팔을 감으며 안긴 이자는, 질척하게 혀를 섞다가 입술이 떨어지자 헤이즐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짐승처럼 킁킁거렸다. 헤이즐의 살에서 나는 체취와 과수원의 냄새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저 이 달아빠진 걸 얼른 먹어 치우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헤이즐은 제게 들러붙는 이자를 확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가슴이 밀착되자, 서로의 심장 고동이 피부 너머로 전해졌다. 거친 박동이 이자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두 사람은 하나로 엉겨 있었다. 코를 이자의 목덜미에 박고 깊게 숨을 들이키자 땀 냄새, 무화과 냄새, 그리고 이자만의 살냄새. 모든 것이 뒤섞여 헤이즐의 이성을 녹였다.
한 손으로는 이자의 허리를 살짝 들어안은 헤이즐은 고개를 숙여 가슴에 입을 가져갔다. 옷감 위를 천천히 더듬더니 유두를 찾아 입술로 감싸 빨아댔다.
"으응..."
침으로 젖은 직물이 민감해진 유두를 더욱 자극했다. 옷감의 거친 질감과 뜨거운 혀가 동시에 느껴질 때마다 이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헤이즐은 한쪽 유두를 충분히 괴롭힌 뒤 반대편으로 옮겨가 똑같이 빨고 핥고 깨물었다.
"아... 헤이즐..."
한 팔로는 이자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헤이즐의 다른 손은 이자의 바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뜨거운 손바닥이 엉덩이 살을 쓰다듬으며 골을 따라 더듬어 내려가 그 사이의 오므라든 구멍을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댔다.
"아...!"
헤이즐은 이자의 허리띠를 재빠르게 잡아 풀었다. 헐렁해진 바지가 허벅지를 타고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순식간에 이자의 하반신이 노출되었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자의 맨 허벅지를 움켜쥐고 들어 올린 헤이즐은 한쪽 다리를 자신의 팔에 끼웠다. 이자의 허벅지가 헤이즐을 향해 활짝 벌어졌다.
한쪽 발로만 땅을 디딘 채, 나무에 등을 붙이고 겨우 버티고 있던 이자는 헤이즐이 팔에 끼운 허벅지를 당기자 균형을 잃고 헤이즐에게 매달렸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서늘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헤이즐은 서둘러 자신의 바지 앞섶을 풀어 발기한 성기를 꺼내 이자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갖다 붙였다.
"으윽..."
헤이즐이 샅을 맞붙이고 허릿짓을 하자 단단한 것이 엉덩이 골을 파고들며 구멍을 찔러왔다. 겉만 보면 마른 상태처럼 건조해보였던 이자의 그곳은 헤이즐이 허릿짓할 때마다 끝부분이 조금씩 들어갔다 나오며 젖어갔다. 작정하고 귀두를 푹 담갔다가 뺐을 땐 구멍 안쪽에서부터 딸려나온 액이 실처럼 이어졌다.
헤이즐은 그대로 젖은 귀두를 구멍에다 비벼댔다. 잔뜩 달은 구멍이 귀두가 문질러질 때마다 벌름거리며 삼키려고 들었다. 아직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 묵직한 압박감과 뜨거운 열기만으로도 뱃속 깊은 곳이 저릿했다.
"기다리게 하지말아요.."
이자가 헤이즐의 목을 껴안으며 가쁜 숨으로 속삭였다. 헤이즐 역시 땀과 과즙으로 끈적해진 몸을 서로 비비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귀두가 스칠 때마다 애가 타서 엉덩이를 내리려고 드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헤이즐은 팔에 걸치고 있던 이자의 다리를 당겨 자신의 허리에 감게 했다. 땀에 젖은 허벅지 살이 헤이즐의 탄탄한 허리에 빈틈없이 맞붙었다. 살이 닿는 감각에 몸을 떨면서도 이자는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헤이즐을 올려다보며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먹기 좋게 익었군요, 이자."
그 말과 동시에, 두 손으로 땀으로 젖은 엉덩이를 움켜잡은 헤이즐은 발기한 것을 그대로 젖은 입구에 밀어 넣었다. 이미 달아오른 내벽이 헤이즐의 성기를 무리 없이 삼켰다.
독한 무화과주와 늦여름에 취한 이자는 저항할 힘도 부끄러워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다리가 풀릴 것 같아 헤이즐에게 더욱 매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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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듯 익어버린
⠀⠀⠀⠀⠀헤이즐×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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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이자는 눈을 떴다. 창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잔인할정도로 눈부셨다. 평소처럼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려던 이자는 몸을 움직이자마자 입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으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건 예사였고, 골반이 억지로 벌려진 채 굳어버린 듯 삐걱거렸다. 허리를 문지르고 있는데 잇다라 엄습해오는 두통에 이자는 잠시 이마를 짚었다. 아마 어제 마신 무화과발효주때문이겠지. 혼자서 한 부대를 다 비웠으니.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을 느낀 이자가 미간을 좁혔다.
가장 끔찍한 건 피부에 닿는 감각이었다. 씻지도 못하고 기절하듯 잠든 탓에 온몸이 설탕 시럽을 바른 듯 끈적거렸고 엉덩이 아래의 시트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제 안씻고 잤던가. 아직 잠이 덜깬 채로 마른세수를 하며 무심코 어젯밤을 떠올린 이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잠겨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선명하게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헤이즐의 물건을 탐욕스럽게 빨아댔던 입안의 감각, 으깨진 과육 위에서 미끄러지면서도 쾌락에 겨워 헤이즐의 위로 올라타 허리를 돌려대던 제 모습이 적나라하게 스쳤다. 그뿐인가, 침실에 와서도 부족하다며 "더 채워달라"고 다리를 활짝 벌리고 매달리기까지 했으니.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침구에 남은 말라붙은 정액과 과즙이 엉겨 붙어 만들어낸 붉고 희끄무레한 얼룩이 어젯밤 두 사람이 얼마나 미친 듯이 뒹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 흔적을 읽은 이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제기랄..."
이자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급격히 밀려드는 수치심에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팔이 이불 위로 이자를 감싸 안았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을 날씨는 아닌데."
헤이즐이었다. 잠기운에 젖어 낮게 갈라진 목소리에 짓궂은 웃음기가 역력했다.
돌아오는 답이 없자 헤이즐은 이불 덩어리를 억지로 끌어내렸다. 이자가 필사적으로 이불자락을 붙들고 버텼지만 힘에서 밀려 결국 얼굴을 드러내고 말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이자의 얼굴은 터질 듯이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얼굴이 왜 그래요. 감기라도 걸렸나."
헤이즐이 짐짓 모른 척하며 이자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이자는 그 뻔뻔한 손을 쳐내며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아니에요... 저리가요."
이자가 기어들어가듯 웅얼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자신과 거리를 벌리려는 이자를 지켜보던 헤이즐은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이불 속으로 슬그머니 손을 집어넣고 이자의 허벅지 안쪽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아니, 언제는 가지 말라고 여기로 제 허리를 꽉 조이시더니."
"아!"
이자의 매끈한 허벅지를 훑어 내리던 손아귀에 불현듯 억센 힘이 실렸다. 살이 눌릴 정도로 꽉 움켜쥐는 악력에 이자가 감전된 사람처럼 파드득 떨었다. 헤이즐의 손길이 닿은 살갗이 데인 듯 화끈거렸다.
"정말 섭섭하군요."
"그만해요."
이자가 두 손으로 허벅지를 움켜쥔 헤이즐의 손을 급히 밀어냈다. 헤이즐은 버티지 않고 순순히 떨어져 줬지만 묘하게 얌전한 태도가 오히려 더 수상했다. 의아함에 이자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자 헤이즐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이자, 당신이..."
감격에 겨운 듯 뜸을 들이는 태도에 영문을 모르는 이자가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 순진한 반응을 즐기듯 헤이즐의 눈매가 유려하게 휘어졌다.
"무릎으로 기어 와서 제 걸 빨아줄 때는 정말, "
이어지는 말에 기겁한 이자가 헤이즐의 입을 틀어막았다. 귀까지 빨개지다 못해 목덜미까지 붉게 물든 모습이 꽤 볼만했다. 입이 막힌 채로도, 헤이즐의 시선은 어젯밤 제 것을 집어삼켰던 이자의 입술에 집요하게 꽂혀 있었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이자가 고개를 획 틀어버렸다. 제 입을 막은 손바닥에 쪽, 키스하고 떼어낸 헤이즐의 눈빛이 짓궂게 반짝였다.
"왜 부끄러워합니까. 어제 아주 장관이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인줄 알았어요."
헤이즐에게 붙잡힌 손을 빼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어정쩡하게 몸이 묶여버린 이자는 울상을 지으며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놀리지 마요, 진짜..."
"놀리는 거 아닙니다. 당신에게 정욕의 화신이라도 내려온 줄 알고 그만 감동했지 뭡니까."
"제발 닥치라고요......."
헤이즐의 뻔뻔한 감상평에, 결국 이자는 더 듣지 못하겠다는 듯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어버렸다. 웅크린 등 위로 이자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잊어요... 제발 잊어줘요..."
"절대 못 잊죠. 내년 축제 때 또 해야 하는데."
낮게 웃음을 흘린 헤이즐이 베개 위로 드러난 이자의 뒤통수를 가볍게 투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이불을 완전히 걷어차 버렸다. 햇살 아래 드러난 이자의 몸 곳곳에는 헤이즐이 남긴 붉은 키스 마크와 어딘가에 긁힌 자국들이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욕실로 가시죠. 앞으로도 일정이 있으니."
헤이즐이 이자를 안아 올리려 하자 이자가 몸을 사리며 거절했다.
"됐어요. 혼자 할 수 있어요."
"어제 그렇게 혹사당했는데 걸을 수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헤이즐이 턱짓으로 이자의 다리 사이에 남은 하얀 자국을 가리켰다.
"혼자 처리하기 힘들 겁니다. 어제 제가 당신 뱃속에 몇 번이나 쌌는지 기억도 안 나거든요."
낯을 붉히게 만드는 적나라한 표현들만 골라쓰는데도 도저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않아 이자는 애꿎은 입술만 잘근거렸다. 이미 엉덩이가 구멍에서 스며나온 헤이즐의 정액으로 축축했다. 움직이면 당장이라도 쏟아질것 같았다. 숱한 고민 끝에 저항하기를 포기한 이자가 헤이즐에게 몸을 맡겼다. 이자를 안아들고 욕실로 향하던 헤이즐이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아, 아침 식사는 무화과를 곁들인 샐러드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
"왜요? 어제는 없어서 못 먹는다고 달려드시더니."
끝까지 놀려대는통에 분에 못 이긴 이자가 헤이즐의 가슴팍에 쿵, 쿵 머리를 박아댔다. 헤이즐은 맞으면서도 즐거운 듯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짜증스러운 움직임이 점차 약해지더니, 결국 이자도 못 말린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이 지독하게 달콤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
며칠간의 공식 일정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슐랑거와 바움쿠헨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교역을 성사시켰고 왕실로 보내는 막대한 예물이 슐랑거로 향하는 마차에 실어졌다.
"이건 당신 몫입니다."
이자가 마차에 오르기 전, 헤이즐은 작은 상자 하나를 이자의 손에 쥐여주었다. 상자 안에는 최고급 무화과로 담근 발효주 한 병이 들어 있었다. 이자가 물끄러미 상자를 내려다보는 사이에 헤이즐이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여왔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제가 보고 싶어질 때, 이 술을 당신 입에 머금으면서 여기서 보낸 축제의 밤과 저와의 키스를 기억해주십시오."
달콤한 술 향기보다 더 진득하게 달라붙는 목소리였다.
이자는 잠시 숨을 멈춘 채, 귓가를 맴도는 열기를 갈무리하듯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헤이즐을 응시하던 이자는 말없이 그의 손을 조심스레 받쳐 들었다. 곧게 뻗은 등이 깊숙이 굽혀지고 손등 위로 입맞춤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지켜보는 눈이 많은 이곳에서, 이자가 자신의 연인에게 건넬 수 있었던 것 중에 가장 정중하고 애틋한 대답이었다.
이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마차에 올랐다. 헤이즐은 이자가 탄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슐랑거로 복귀한 이자는 한동안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과실주는 물론 향이 강한 음료조차 피했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씩.
일과를 마치고 홀로 남겨진 밤이면 이자는 헤이즐이 준 무화과 주를 꺼내곤 했다. 작은 잔에 술을 따르자 코 끝에 익숙한 단내가 스쳤다. 잔을 기울인 이자는 단숨에 들이키지 않고 한 모금만을 입에 담았다.
그는 제 연인이 일러준 대로, 달큰한 그것을 오랫동안 머금고 있다가 천천히 목 뒤로 흘려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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