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love is wildfire / 1 / 20251020
시체를 발견한 용병단은 다친 발로는 얼마 못 갈 것이라며 추적대를 보냈지만 결국 이자를 찾지 못했다. 이자는 무사히 도망쳤다. 잠도 자지않고 쥐나 벌레따위를 주워먹어가며 끊임없이 움직인 덕분이었다.

그 체력도 결국 한계에 다다랐고 그렇게 길바닥에 엎어진 채 의식을 잃은 이자를 발견한 것은 용병단 살라맨더의 단델리온이었다.

마침 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지 얼마 되지 않아 용병단 전체가 휴식기에 들어간 참이었다. 고향에 갔다 올 사람들은 떠났고 잔류할 사람들은 남았다. 단델리온은 잔류하는 쪽이었다. 연고가 없으니 당연했다. 숲 근처를 산책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단델리온은 길가에 쓰러진 이자를 주워 병단의 주둔지로 데려왔다.

눈을 뜬 이자가 이를 세워 자신의 팔을 물어 뜯었을 때 단델리온은 자신이 주워온 게 혹시 사람이 아니라 들짐승이었던건가 싶었다. 이자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단델리온에게 달려들었다. 그 소리는 천막의 눅눅한 공기를 찢고 모두의 고막에 달라붙었다.

"이런 젠장, 단델리온!"

동료 중 하나가 소리쳤다.

"그거 당장 내다 버려! 미친 거 아냐?"

어제까지만 해도 단델리온의 옆구리를 찌르며 낄낄대던 친구였다.
"어디서 저렇게 예쁘장한 걸 주워왔어? 네 취향이 그거였냐?"
하지만 이제 그 '예쁘장한 것'이 탁자를 뒤엎고 으르렁대자 다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난동을 부리는 이자와 동료들의 사이를 제 몸으로 가로막으며 단델리온이 말했다.

"다들 진정 좀 해. 내가 책임질테니까."

단델리온은 이자를 발견했을 당시 이자가 입고 있던 옷이 피투성이였던 것을 떠올렸다.

치명상을 입은 줄 알고 서둘러 옷을 벗겨 확인한 단델리온은 핏자국이 이자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안심했다. 그건 다행이었지만 등과 허리를 따라 난 손가락 자국 같은 멍들이나 목덜미의 붉은 흔적들, 허벅지 안쪽의 상처들을 보고 무슨 일을 당하고 온 건지 대충 짐작이 갔다. 용병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흔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다. 전쟁터에서, 점령당한 마을에서, 때로는 용병단 내부에서도 생기는 안 좋은 일들 말이다.

단델리온은 조용히 피 묻은 옷을 처리했다. 동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이자에게 깨끗한 옷을 입히고 발을 감싸주고 내버려뒀다. 그래서 눈을 뜬 이자가 덤벼들었을 때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네가 주운 거니까 네가 알아서 해."

동료들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금기라도 되는 듯 단델리온의 천막 근처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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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
⠀⠀⠀⠀단델리온, 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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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천막 안에는 기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이자는 잠도 자지 않고 음식에도 손대지 않았다. 그저 구석에서 덫에 걸린 짐승처럼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천막 안의 공기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다. 단델리온은 턱을 괴고 이자를 바라봤다. 그래도 뭔가를 먹어야 살 텐데. 저러다 진짜 죽겠다 싶었다. 붙잡아서 억지로 먹이기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런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때 천막 밖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단델리온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바로 나가지 않고 이자 쪽으로 다가갔다. 이자는 당연히 몸을 움츠리며 경계했다. 한쪽 무릎을 굽혀 몸을 숙인 단델리온은 이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이자에게 준 죽을 한 입 떠먹었다.

"봤지? 독 같은 거 안 들었으니까. 내가 나가면 먹도록 해."

그렇게 말한 단델리온은 조용히 천막을 나갔다.

"그 미친개는 좀 어때?"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이자에 대해 묻는 말에 단델리온이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하자 동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두목이 없는 지금 단델리온은 실질적인 책임자였다.

"마을에 가서 음식을 좀 사 와야겠어. 이놈의 돼지들이 하도 처먹어서 말이야."

뒤에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던 동료 몇이 손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입이 하나 늘어서 그런 거 아니고?"
"저 몸으로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쓸데없는 걱정 마."

핀잔에 멋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던 단델리온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저기, 가는 김에 붕대랑... 연고, 회복에 좋고 뼈에 잘 듣는 약초도 부탁해."

"왜?"

"저 친구 발에 부상이 있더라. 움직이는 걸 못 봐서 어떤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방치해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동료가 혀를 찼다.

"딱 보니 어디서 도망 나온 것 같은데, 조만간 여기서도 도망갈 걸 뭐 하러 수고를 들여?"

"그래도 부탁해."

"에이, 알았어. 생각해보지 뭐."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동료가 돌아서다가 갑자기 "아" 하고 멈춰 섰다.

"아예 의사를 불러와?"

단델리온이 조금 놀라며 바라보자, 동료가 무심하게 턱짓했다.

"네가 거둔 이상 일단은 식구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그리고 다리가 나아야 나중에 도망을 쳐도 잘 칠 거 아냐."

단델리온이 잠깐 말을 멈췄다. 시선이 이자가 있는 천막 쪽으로 향했다가 돌아왔다.

"뭐, 그건 그때가서 생각해 보자고."

그때 뒤에서 카드게임 하던 놈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야 단, 도망가면 그냥 보내줄 거면서!"

"닥쳐!"

짖궂은 놀림에 단델리온이 소리치자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동료 셋 정도가 마을로 떠나는 것을 보고 천막으로 돌아온 단델리온은 웬일로 그릇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감격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그릇을 들자 경계는 여전했지만 조금 누그러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 부분에 적당히 만족하며 단델리온은 거리를 유지한 채 말했다.

"마을에서 의사가 올 거니까, 그때 왼쪽 발 좀 보여줘."

붕대를 갈아주려고 했으나 처음 데려와 기절해 있을 때만 가능했고 그 후로는 반경 2미터 정도는 접근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발등에 관통상이 있으니까 그대로 두면 못 걸을지도 모른다고, 약도 처방받아서 먹자고 단델리온이 줄줄 얘기했지만 이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단델리온은 이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날에 비명을 지르며 난동 부리는 걸 봐서는 벙어리는 아닌 것 같은데... 상관은 없지만 의사가 증세를 물을 때도 저러면 어쩌지 걱정되었다.

이틀 뒤 마을에서 의사가 찾아왔다. 발목을 눌러보기도 하고 접었다 폈다 하며 만져보던 의사가 가만 놔뒀을 때 통증은 어떠냐고 질문했다.

"평소엔 그렇게 아프진 않아요."

순간 천막 안팎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카드 치는 소리도, 잡담 소리도. 누군가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자의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긴 했지만 약간 높은 톤의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그 뒤로 의사와 이자 사이에 질문과 응답이 몇 번 오갔고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트에 이것저것 체크했다. 다시 입을 다문 이자는 눈을 내리깐 채 차트에 뭔가를 적는 의사라던가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담요나 발을 내려다봤다. 천천히 움직이던 이자의 시선이 치켜올라가며 단델리온에게 닿았다.

눈빛에 담긴 것은 평소 동료들이 보여주는 신뢰나 애정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인 것 같아서 단델리온은 그 뜻을 읽기가 어려웠다. 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눈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의사는 천막 밖으로 나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발등 상처는 다행히 덧나진 않았습니다. 파상풍 처치도 이미 되어 있더군요."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중얼거리며 한숨을 쉰 의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관통상이라고만 들어서 왔는데, 막상 진찰해보니 발목 인대가 상당히 늘어나 있더군요. 아마 무리하게 걸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건 붕대로 고정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최소 한 달은 절대 무리시키면 안 돼요. 자칫하면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단델리온을, 마치 그가 무슨 학대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쏘아붙였다.

"솔직히 말해, 지금 가장 시급한 건 발이 아닙니다. 영양실조가 심해요.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굶어 죽으면 다 소용없으니까 그 부분부터 신경써주세요."

단델리온은 졸지에 몸 상태도 신경 써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단델리온은 주의하겠다고 대답했고 옆에서 동료들이 격려의 의미로 등을 쳐주었다.

그날 밤, 단델리온은 누군가 제 위로 올라타는 무게감에 잠에서 깼다. 언젠가 이러지 않을까 생각해왔었기 때문에 전혀 놀라지않았다. 드디어 이 녀석이 날 죽이려 드는구나. 어쩐지 반가운 기분까지 들었다. 몸을 뒤집어 손목을 잡아채 바닥에 찍어 눌러 제압했다. 분명 어디선가 주웠을 송곳이나 유리조각 따위가 손에 들려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위를 봤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의아했다. 가만 보니 이자가 저항도 하지 않았다.

"너 무슨 생각이야."

이상하게 여긴 단델리온이 물었다.

"어차피 이러려고 날 주워서 보살핀 거 아니야?"
"이러려고가 뭔데."

"당신도 사람 좋은 척하지만 결국 내 가랑이에 관심 있는 거잖아."

이자의 말투가 유독 건조했다.
세상에. 단델리온은 얼굴을 들여다보던 시선을 무심코 아래로 내렸다가 화들짝 놀라 이자에게서 떨어졌다. 이자가 다 벗고 있었다. 용병 생활을 하며 길 가던 돌멩이보다도 더 많이 보는 게 남자 몸이지만, 이자의 몸은 뭔가 달랐다. 다만 단델리온은 진심으로 이자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지 않았기에 유독 더 당황했다.

"아니 난.... 유감이지만 아니야. 저기... 뭐라도 입어라."

허리를 세워앉은 이자는 움직이지 않은 채 단델리온을 응시했다. 한숨을 내쉰 단델리온은 자기 상의를 벗어 이자에게 던져주고 곤란한 얼굴로 이마를 문질렀다. 자신에게로 던져진 단델리온의 옷이 허벅지 위로 떨어진 걸 건드리지도 않고 가만히 내려다보던 이자가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럼 뭘 원하는 건데요."

"그런 거 없어."

"그럴 리 없잖아요."
단델리온의 대답에 이자가 바로 대꾸했다.

"아니다. 그래, 그냥 내일부터 밥이나 잘 먹고 잠이나 좀 잘 자라."
단델리온은 마른세수를 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혼자 자면서 머리 좀 식혀."

이자에게서 한참이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가기 전에 머뭇거리며 돌아보니, 이자가 모로 쓰러져 있었다.


이자도 너무 긴장했다. 몸밖에 줄 게 없으니 원하면 대줄 생각으로 그런 것이긴 했는데, 단델리온이 자신을 데려와서 보여준 행동이 진짜로 그걸 원해서 그런 거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그게 아닌 걸 확인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고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놀라서 다가간 단델리온은 이자가 단순히 잠이 든 거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생각인지..."

손으로 잠든 이자의 볼을 툭툭 건드린 단델리온은 이자의 몸을 잡아 올려 아까 자기가 던져줬던 옷을 이자에게 입혀줬다. 이자가 입고 있던 것은 기절해 있을 때 아무거나 입혀놨던 것이어서 그것보다는 이게 낫겠다 싶었다. 이자의 덩치가 자신에 비해 너무 작은 탓인지 옷이 심하게 헐렁거렸다.

이자의 뒷목을 손으로 받쳐 조심스럽게 침상에 눕힌 단델리온은 몸 위로 담요를 덮었다. 담요 밖으로 빠져나온 신체는 없는지 꼼꼼히 살핀 뒤 천막 밖으로 나왔다.

불침번을 서는 동료가 졸고 있었다. 단델리온은 그를 건드려 들어가서 자라고 들여보낸 뒤 그 자리에 앉았다.

정말로,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다. 없었는데도 머릿 속에는 이자의 배꼽 옆에 자리 잡고 있던 점이 계속 생각났다. 그 화상이 단델리온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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ஐ.*.˚